워니얌님께서 주신 단문 리퀘 주제는 "잠입" 입니다. 캐릭은 별도로 지정하지 않으셨지만 제 맘대로 기린닭 선정합니다.(...)
 *캐해 등 전체적인 구상은 <애늙은이> 전체와 <잔불의 기사> 이야기가 146화까지 풀린 내용에 기반합니다.
 *캐릭 해석 등에 저의 적폐왜곡날조가 많습니다. 물론 원작과 캐릭에 대한 권리는 작가인 환댕 님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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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다. 다워.”

 

 동대륙에 파견할 특임대가 확정된 날 그 임무에 참가한 기사들이 누구인지 듣자마자 와론이 내놓은 감상은 그것이었다. 가볍게 내뱉어진 두 마디는 언뜻 감탄처럼 들리는 어조였지만, 지우스는 와론이 생략한 빈정거림을 똑똑히 들은 기분이었다. 너네 잠입, 첩보 같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지우스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미간을 짚었다.

 

 “어쩌라고. 그 셋 말고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어.”

 “애초에 왜 기사한테서 지원자를 받아? 잠입, 첩보잖아. 남들이랑 평범하게 섞이면서 튀지 않아야 한다고. 기사가 그게 가능해?”

 “이 일은 장군이라는 미지의 존재의 전력을 평가하는 게 목표야. 그건 기사가 나설 수밖에 없어.”

 “어차피 전쟁은 기사 대 장군의 싸움이다? 어련하시겠어요~”

 

 너희 기사들은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고 힘이면 다 해결되는 줄 알지. 너희가 동대륙과의 전쟁을 어떤 태도로 준비하고 있는지 잘 알겠다. 또다시 와론이 생략한 냉소를 면전에서 들은 기분이 된 지우스는 잠시 자신에게 통찰의 눈 같은 전설적인 능력이 생기기라도 했나 스스로를 돌이켜보았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지우스는 와론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생략하면서 어떻게 발화하는지 파악할 만큼 충분히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것뿐이었다. 때때로 와론은 정말로 기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같은 기사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냉혹하게 비판했고, 지우스는 대개의 경우 그 생각에 반론할 말이 궁했다. 실은 대체로 동의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그래서 대안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지우스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입장이었고, 아무리 합리적인 계획을 공들여 준비해도 실무에서는 결국 정신없이 터지는 변수와 사건사고 가운데 당장 손이 닿는 수단만으로 꾸역꾸역 때워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더군다나 전쟁이 기사의 일이라면 보통의 사람들은 최대한 이 일에 끌어들이지 않으려 하는 것이 -또는 사고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기사의 본능이나 다름없는 사고방식이다. 그 어떤 기사도, 심지어 지우스 자신도 장군과 대면해야 할지도 모를 위험한 임무에 기사가 아닌 보통의 사람들을 보내는 것은 이런 지적을 듣기 전까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사로 살아오면서 신발 속의 모래알처럼 느끼곤 하던 자잘한 좌절감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대신, 지우스는 그 감정들을 그러모아 뭉툭한 말로 다듬어 와론을 쿡 찔렀다.

 

 “그렇게 잘 알면 네가 지원하지 그랬어.”

 “내가?”

 

 와론은 과장된 동작으로 자신의 투구와 론누와 크고 새까만 차림새를 가리켰다. 10리 밖에서도 누구나 기사 새까만 닭을 알아볼 수밖에 없는 유명한 모습이었다. 지우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투구와 론누가 없으면 누구도 너를 알아볼 수 없을 거야. 의외로 신중해서 함부로 싸움을 걸지 않고, 이미 장군을 대면한 적이 있기에 장군급의 전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으며, 여차하면 다양한 변수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는 강자. 생각할수록 너야말로 적임자였던 것 같군.”

 

 표정 없는 투구가 이쪽을 빤히 쳐다본다. 지우스가 농담을 하는 것인지, 진담이라면 의도가 무엇인지 톺아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런 말을 들으리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해 조금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당황한 것은 지우스도 마찬가지였다. 말장난이나 재치 있는 비아냥이라면 모를까, 이런 반응을 예상한 건 아니었다. 와론은 지우스의 말에서 어느 대목 때문에 신중해진 것일까? 와론의 침묵이 길어지자 지우스는 조심스럽게 한발 물러나기로 한다.

 

 “그냥 해본 소리야. 신경 쓰지 마.”

 

 그 말을 하면서 지우스는 와론의 투구를 눈짓했다. 소문에는 와론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세간에서는 기사 새까만 닭 와론의 투구를 두고 온갖 억측이 돌지만 중론은 기어스와 관련있을 거라는 추측이었고, 기사들은 그 정도면 납득했다. 기사는 떳떳하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싸우는 것을 명예로 여기지만 와론만큼은 예외다. 아무리 중앙대륙의 명운이 걸린 일이라 해도 지우스가 와론에게 투구를 벗도록 요구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기사..네가 나를 면전에서 칭찬하는 건 거의 처음 아니냐? 이야~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 무려 담청색 기린님이 나를 다 칭찬해주시고~”

 

 마침내 입을 연 와론은 론누를 짚은 쪽의 반대편 다리로 체중을 실어 몸을 기울이면서 고개를 까딱였다. 과장된 말과 어색한 몸짓에서 지우스는 와론이 더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기색을 느꼈다. 와론이 당황한 것도 그가 실제로 유능한 기사라는 건조한 사실을 지우스의 입으로 들었기 때문은 아닌 듯했다. 상의의 주머니 속에 꽂아넣은 두 손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쥔다. 이것은 기회다. 온 세상을 제 집처럼 활개치고 다니면서 정작 알려진 것은 거의 없는 저 투구 속에 숨은 이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빵부스러기처럼 흘리는 순간이다. 와론의 미묘한 반응과 몸짓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눈을 크게 뜬 지우스는 문득 와론이 지닌 새까만 색의 한복판에서 티끌처럼 덧없이 흔들거리는 녹색의 목걸이에 눈길을 멈춘다.

 

 소문이 맞다면 세상에는 와론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다. 언젠가는 있었겠지만, 적어도 기사가 된 후로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 세상의 사람들이 눈앞의 이를 기사 새까만 닭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저 유명한 투구와 론누였다. 그렇다면 투구와 론누가 없는 새까만 닭은 새까만 닭이 아니게 되는 것일까?

 

 그 실없는 생각이 손길에 닳아빠진 돌조각 같은 목걸이를 바라보는 동안 지우스의 머릿속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간다. 와론과 부대낀 지난 세월들이, 그가 직접 보고 겪은 숱한 시간이 어떤 그림을 이루며 재배열된다. 그 말은, 누구든 투구를 쓰고 론누를 들기만 하면 새까만 닭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눈앞의 이는 혹시 그런 식으로 기사들 사이에 잠입해 기사들을 관찰하며 매순간 어떤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누군가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뭐, 어쨌거나 걔들은 자원하기라도 했다는 점에서 다른 놈들보다는 낫긴 해. 그래도 아직 신입이나 다름없는 애송이들이니 교육할 게 많겠어.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는걸? 기린.”

 

 그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선택한 길에선 제대로 해. 기사답게 책임을 지라고. 와론은 그 와중에도 잊지 않고 지극히 현실적인 독설을 던진다. 방금 전의 미묘한 균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평소의 와론, 지우스가 아는 와론이다. 지우스는 평소처럼 두통을 느끼듯이 두 눈을 질끈 감는 것으로 답한다.

 

 와론은 도시전설이나 다름없는 색깔론의 예시가 될 정도로 손에 꼽히는 강력한 기사였다. 투구 속에 든 이가 누구든 사람들이 와론을 기사 새까만 닭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가 나린기인 론누의 인정을 받은 주인이자 격기사에 걸맞은 강자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이 와론의 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론누를 손에 잡더라도 와론의 힘만은 흉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기사란, 그런 존재였다.

 

 그러니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좌절감과 과로 때문에 심술처럼 솟아난 별 것 아닌 망상이다. 지우스는 고개를 흔들며 머릿속의 망상을 털어낸다.

 

 “잡담이 길어졌군. 난 다시 회의 들어가야 해서. 나중에 보자.”

 “오냐.”

 

 와론은 고개를 까딱이곤 팔짱을 끼며 근처의 기둥에 등을 기댔다. 몸을 반쯤 돌리면서 지우스는 와론의 키 크고 외로운 그림자를 마지막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사가 되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하늘 아래에서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온갖 일들이 잘도 일어나고 있더란 것이다. 굳이 가능성을 따져보자면, 자신이 알던 사람이 실은 그 사람이 아니더라는 일도 절대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렇지만 지우스는 투구와 론누가 없더라도 자신이 아는 기사 새까만 닭은 기사들의 부족함을 가차없이 비난하며 그들의 등에 창을 겨눌지언정 자신을 싫어하는 기사들 사이에 태연히 버티면서 기사의 일을 하는 눈앞의 여자 뿐일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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