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9일 풀다 만 썰.
그 개판, 난장판을 어찌어찌 마무리하고 둘이 은퇴해서 사람 발길 적은 숲속의 작은 집에 살림 차리고 한넘은 산지기 한넘은 약초꾼 노릇을 하며 조용히 지낸 때로부터 몇년 후. 우리의 최강자가 길을 헤매다, 산에서 마수를 만나 조난당한 여행자들 구조하러 온 수상한 산지기랑 마주치는 거 보고싶다
별다른 무기도 없이 그냥 다용도 손도끼로 마수를 간단히 해치우고 조난자들 구해서 올라온 그 키 큰 회백발의 여자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어째선지 불쾌한 방향으로 익숙한 느낌이라 당황하고 설마설마 하는 최강자. 이 부근에 출몰한다는 풀빛머리 약초꾼과 어쩌면 걔랑 같이 있을 짜증나는 놈을
잡으러..아니 설득하러 온 건데 초장부터 속내를 드러냈다간 이 수상한 넘이 바로 튀거나 속을 긁을 것 같아서 최대한 모른 척을 하며 (그렇다. 세월이 흘렀다...!) 약초꾼 놈의 인상착의를 물으며 그넘이 한다는 약방에 데려달라고 주문하는 최강자. 수상한 산지기씨는 그 말엔 별 대꾸 안 하고
구조한 사람들부터 챙기는데, 부상자가 있기 때문에 어쨌든 결국엔 약방이 있는 작은 마을로 내려가고. 이 수상한 산지기씨가 v자연스럽게v 사람들과 인사하고 대화하고 웃는 걸 보며 이쪽도 세월이 흐르긴 흘렀다..기보단 내가 사람을 착각한 것 아닐까 고뇌하는 최강자.
잠시 후 흙투성이로 너무 신나게 놀고 있던 동네 애들이 몰려오는데, 그 중에서 회백발에 자신이 기억하는 금색 눈동자를 지닌 조그만 애를 발견하고 경직되는 최강자. 애가 엄마 부르며 산지기씨한테 폭 안기고, 산지기씨는 턱이 땅에 닿을 지경으로 떨어진 최강자를 무시한 채 애를 들어 안고서
애가 열심히 횡설수설 떠드는 말들을 들어주고.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어 하면서도 그들을 따라가니 약방에 도착하는데. 거기서 한쪽 팔이 없어 소매를 묵어놓은 풀빛머리 약초꾼이 동네 사람한테 미리 소식 전달받고 부상자들을 도우러 준비하며 나왔다가 산지기씨랑 최강자와 딱 마주쳐버리기.
약초꾼도 최강자도 당장은 말을 못 있는데 산지기씨가 오늘 저녁은 손님이 있네. 나 먼저 간다. 라며 애 데리고 마을 외곽의 숲속으로 사라지고. 약초꾼이 대신 설명하겠지. 이 마을에는 여관이 없습니다. 지금 산을 내려가기엔 늦었으니 저희 집에서 하루 묵고 가시죠. ...코끼리님.
다행히도 여행자들의 부상은 심하지 않아서 이쪽 일은 금방 마무리하고, 약초꾼 따라 집으로 가는 내내 말없이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심사를 표정으로만 드러내는 최강자. 집에 도착하니 먼저 빨랫대삼아() 땅바닥에 꽂아놓은 그 악마 같은 창이 보이고, 산지기는 손님방 마련하고 장작 패느라 바쁨
약초꾼은 익숙하게 한팔로 저녁 차리고, 애는 부모 둘 중 하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간단한 일을 거들거나 조잘대다가 이따금 멍하니 앉아있는 최강자 앞을 얼씬거리는데 눈 마주치면 도망가버림. 해서 저녁상이 차려지고, 애 붙잡아다 같이 씻고 나온 산지기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서는 최강자.
너...! 하고 말 걸려는데 손바닥을 들어보이는 산지기. 나중에. 라고 말하며 아이를 눈짓하는 걸 보고 최강자는 깨닫는 것이다. 이 둘은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으며 애가 듣는 앞에선 그 이야기를 결코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아마도 여기 사람들은 이들이 기사라는 것조차 모를 거란 걸.
저녁식사는 일반인 기준으로 지극히 평범하게 단란해서 오히려 최강자는 어색하고 서툴러 하지만, 여튼 아는 사람들 근황 얘기와 바깥 세상 돌아가는 얘기 같이 아는 화제가 나오면 말은 할 수 있었음. 그러다 대화가 잠시 끊길 때마다 어른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데 애는 천진하기만 하고.
약초꾼이 애를 달래서 재우러 간 사이 산지기가 집에서 담근 술을 꺼내옴. 우리 같이 술 먹는 거 처음이지? 물론 술은커녕 얼굴 보는 것도 어떤 의미로 처음인 사이지만 최강자는 묵묵히 잔을 받음. 말없이 술만 홀짝이다, 약초꾼이 방문을 닫고 예의 그늘진 낯으로 돌아오자 비로소 입을 여는 최강자.
너네, 복귀 어렵겠냐? 원래 최강자는 생에 미련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날뛰던 은퇴 전의 강력한 기사들만 기억하기에 문답무용으로 둘을 잡아다 수도에 끌고 갈 생각이었음. 하지만 이 집의 분위기를 겪고 아이까지 보고 나니 그래선 안 된다는 상식()이 제정신 아닌 자기 머릿속에서도 고개를 든 것.
그걸 말이라고 하냐? 웃음이 밴 어조지만 서느런 노기도 느껴지는 대답. 새삼스럽게도 쟤는 저런 말투 쓸 때 저런 표정이었군, 이런 생각을 하는 최강자. 잠시 후 손아귀에 쥔 빈 잔을 우그러뜨린 채 산지기가 다시 말함. 그럼에도 우리가 필요한 일이란 거겠지. 네가 직접 올 정도로.
묵묵히 듣고 있던 약초꾼이 하나만 남은 손을 산지기의 어깨에 얹고, 그 말없는 다정한 동작과 노기를 눌러참는 산지기를 보며, 아...씨. 라고 생각하는 최강자. 자신은 이 집에서 악당일 수밖에 없음. 일단 들어보죠. 하지만 우린 더이상 기사가 아니며 책임져야 할 다른 전장이 있습니다.
아이가 자는 방을 눈짓하는 약초꾼. 더군다나... 그리고 말을 주저할 때 다시 입을 여는 산지기. 중앙은 염치가 없는 것 아닌가? 아니, 원래 그런 것 없었지~ 까딱하면 얘를 이 꼴로 만든 게 너네는 아닌 줄 알겠어~ 그 노골적인 빈정거림과 분노에, 예전의 최강자였다면 바로 멱살잡아 메다꽂았겠지만
지금은 고개를 들 수가 없음. 사령탑 중의 사령탑이었던 자비로운 기사와 다른 기사를 사냥할 정도로 강력하면서 올곧은 선을 지닌 기사가 은퇴를 선언하게 된 그 사건은, 누군가에겐 기사의 승리로 여겨지겠지만 적어도 최강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차라리 치욕스러웠으니까.
최강자는 나도 참 참을성 많아졌다. 안 그러냐 거북이? 내심 이런 생각을 하며 입을 여는데.
라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기린닭 5만자 연성 어디서 안 떨어지나아아아.... (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