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 참 끝내주는군요. 가내 두루 평안하고, 내일부터 시작될 17대 대통령과의 5년이 무사히 지나가길 기원합니다. 아무리 미운 녀석들이라지만 그들이 망하길 바라는 건 불 끈다고 기름 붓는 것 만큼이나 멍청한 짓이니.. =_= 더불어, 5년간 미운 정 다 든 노무현 대통령께는 참 수고하셨다는 인사 전합니다.
...어 이거 팬픽 맞습니다. 밸리에서 미리 보이는 거 방지하려고 잡담 좀 끄적인 겁니다. (긁적)
시간이 지날수록 고양이는 천천히 나이를 먹는다. 터거가 태어났을 때 멍커스트랩은 열두 살이었지만 터거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스무 살이었다. 터거가 스무 살이 되면 그는 스물여섯이 될 것이다.
생애 두 번째 젤리클볼이 다가오던 무렵 터거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가 태어난 후로 젤리클 일족은 새끼고양이를 여럿 얻었다. 묘하게도 터거와 멍커스트랩 사이에 들어가는 세대가 거의 없었기에 터거는 의도치 않게 폐차장 인근의 어린 고양이들 중 최연장자가 되었다.
바로 그 몇 안 되는 사이세대에 들어가지만 이미 열여덟 살을 넘겨 어른이 된 봄발루리나는 틈을 내어 터거 세대의 고양이들과 놀아주곤 했다. 같은 인간 가족과 살다보니 어릴 적부터 동생처럼 아껴온 드미터가 터거와 함께 하는 어린 고양이들 틈에 끼어있다는 게 평소 들려주는 설명이었지만 그녀의 나이에 걸맞은 이유도 있었다.
나이로 볼 때 인근에서 그녀가 관심을 가질만한 젊은 수고양이는 코리코팻과 멍커스트랩이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쌍둥이 누이하고만 붙어 다니는 코리코팻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멍커스트랩의 경우에는 일족에 대한 책임감의 화신이 되어 또래 수고양이들이 당연히 취할 행동, 그러니까 암고양이들의 관심을 끌려 드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어리지만 나이로 가장 가까운 수고양이인 터거가 있었다.
아직 그녀도 어린 고양이였던 시절에는 우스꽝스런 남동생을 돌보는 심정으로 그와 어울리곤 했다. 멍커스트랩이 일족에 대한 책임감을 자각한 나이인 열세 살이 되었을 때 터거는 목덜미를 뒤덮은 갈기털을 만지면서 암고양이들에게 멋있게 보일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봄발루리나는 갈기를 손질하며 거들먹거리는 터거를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놀리곤 했다. 그런데 세월이 마법을 부렸다. 서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녀는 그 남동생이 제법 멋진 외모를 가졌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아니, 그는 도시 인근의 모든 수고양이 중에서 가장 근사한 고양이로 자랄 게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한 건 봄발루리나만이 아니었다. 터거와 나이대가 비슷하거나 보다 어린 암고양이들이 점차 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고지식한 어른들은 지나치게 요란하다며 질색하긴 했지만 터거에게는 같이 있는 고양이를 누구나 유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질투심이 앞설 수고양이들도 터거에 대해서는 재미있어 하며 그를 따랐다. 의도치 않게 어린 고양이들의 리더 격이 되었지만 어린 고양이들은 누구나 불만 없이 그를 따랐고 그 자신도 대장 노릇을 즐겼기에 어떤 의미로는 이상적이었다.
그런 상황이 마음에 들면서도 들지 않았던 봄발루리나는 틈만 나면 터거와 단 둘이 있고 싶어 했다. 기회가 왔을 땐 드미터조차 떼어놓으려 들 정도였다. 터거 역시 그런 분위기를 눈치 채고 있었다. 아이돌에게 열광하듯이 따르는 어린 고양이들과 달리 자신을 진지하게 이성으로 대하는 봄발루리나의 태도는 어른으로 여겨주는 느낌이 있어서 그를 내심 흐뭇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터거는 시치미를 뚝 떼고 번번이 그녀의 의도를 좌절시켰다. 그게 재미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짝이 너무 일찍 분명해지면 다른 멋진 암고양이들이 그에게서 관심을 끊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계절이 순환하여 젤리클볼의 만월을 살찌울 초승달이 뜨던 무렵 봄발루리나는 다시 한 번 터거를 불러냈다. 터거는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너무 골려먹기만 하다 미움을 사기보단 적당히 어울려주다 멍커스트랩의 심부름 같은 걸 핑계로 도망치자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두 고양이는 밤하늘이 잘 보이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 통통한 쥐를 구워먹은 후 춤을 추며 노닥거렸다. 그렇잖아도 아름다운 붉은 고양이는 그날따라 더욱 화사했고, 제법 흥이 오른 터거는 좀 더 놀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초승달이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을 무렵이었다. 두 고양이는 한바탕 춤을 끝내고 나란히 난간에 걸터앉아 쉬고 있었다. 갑자기 봄발루리나의 아름다운 얼굴에 혐오감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틀림없어. 그리자벨라야.”
터거는 그녀가 쳐다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길 저편,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고양이의 시력으로도 꿰뚫을 수 없을 어둠 속에서 늙은 암고양이가 더러운 뒷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오랜 풍상에 시달리며 먼지로 얼룩지고 거칠어진 털은 본래 무슨 색이었을지 짐작하기도 어려웠고 거동은 불편해 보였다. 이따금 킁킁거리며 쓰레기봉지 사이를 더듬는 것이 쥐라도 쫓는 것 같았는데 수고양이들이 남겨둔 젤리클 일족의 영역 표시 근처에 가면 움찔하며 물러섰다. 혹시라도 자신을 누군가가 볼까봐 바쁘게 주위를 살피고 잔뜩 움츠러든 모습은 쥐보다도 비루해 보였다.
“누군데?”
“엘리자벨라와 가까운 친족일거야.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자주 바깥을 돌아다녔어. 그리곤, 일족을 떠났지.”
“엘리자벨라라면, 내 어머니말인가?”
“응. 일족을 떠난 지 몇 년은 됐을 텐데 이제 와서 무슨 속셈이람. 이제 와서 자기도 젤리클볼에 참석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터거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꼼꼼히 뜯어보았다. 일족의 어른들은 그가 어머니를 많이 닮은 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는 특징, 가령 화려한 갈기 같은 것이 없었다. 젤리클 일족은 거슬러 올라가보면 모두가 가족이니 아마도 자신과는 그 정도 연관밖에 없을 것이다.
“왜 일족을 떠났는데?”
“바깥이 더 좋았나보지. 젊을 적부터 술집 같은 데를 자주 돌아다니곤 했대. 한때는 그녀가 일족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양이였어. 다른 일족의 수고양이들이 오직 그리자벨라를 보기 위해 몰래 영역을 넘어오다가 우리 일족의 고양이들한테 혼나곤 했지. 그런데 지금은 저게 뭐니. 자기 좋을 대로 일족을 떠난 결과가 저런 늙고 추레한 행색이야.”
봄발루리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손사래를 쳤다. 서서히 피어나는 꽃 같은 봄발루리나와 시들대로 시든 그리자벨라는 너무도 대비되었다. 터거는 까닭 없이 명치 언저리가 먹먹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어리둥절해하며 그것에 집중했다.
젤리클은 날 때부터 젤리클이다. 인간과 섞여 살면서도 그들을 오롯이 고양이다운 고양이로 남게 하는 긍지는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기억하는데서 비롯된다. 그것을 상기시키기에 일족은 소중하다. 그런 것을, 그리자벨라는 오로지 자기 즐거움만을 쫓기 위해 가벼이 떠나버렸다. 그렇게 떠나서 행복을 얻기는커녕 동정조차 받지 못하는 비참한 지경에 처했다. 그것을 그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가 느낀 감정은 순수한 분노요 증오였다. 터거는 갈기를 세차게 털며 일어섰다.
“그 어거스가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되는데? 가자.”
일족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보호자 고양이는 틀림없이 벽력같이 화를 내며 그녀를 멀리 쫓아낼 것이다. 그들은 잔뜩 찡그린 채 옥상을 떠났다.
젤리클의 만월이 차오르자 곳곳에 흩어진 젤리클 일족들이 폐차장으로 몰려들었다. 귀성행렬 중 아는 얼굴을 찾아낸 고양이들은 반가이 울음소리를 나눴고, 한동안 도시의 밤은 시내의 모든 고양이들이 한꺼번에 발정을 일으키기라도 한 것처럼 소란스러웠다. 그들 중에는 실제로 봄을 맞은 고양이들도 있었다.
스킴블은 평년보다 무려 한 달 일찍 폐차장에 도착했다. 인간들이 동물에 대해 휴가 개념이 없는 대신 해고 개념도 없음을 이유로 무단결근을 감행한 그는 폐차장 근처에 자리를 잡고 늘어지게 자다가 밤이 깊어지면 어딘가로 총총히 떠났다. 얼마 안 가 스킴블이 제니와 함께 폐차장 주변을 거니는 것이 목격되기 시작했고, 젤리클볼이 임박할 무렵에는 제니의 임신소식이 알려졌다. 두 고양이는 누구와도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고양이인 드미터가 불쑥 그 이야기를 꺼냈다 해서 아무도 놀라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어떤 애가 태어날 거 같아?”
춤을 연습하거나 장난을 치며 놀던 어린 고양이들이 일제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런 시선이 익숙하지 않은 드미터는 얼굴을 붉히며 옆에 있던 봄발루리나의 뒤로 물러섰다. 그 때 공터 구석의 망가진 자동차 위에서 중앙을 향해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드미터를 향하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집중되었다.
“하루에 20시간씩 자고 4시간만 눈이 말똥거리겠지. 잘 때는 인간이 업어가든 쥐가 수염을 건들든 신경 안 쓸 거야. 부모를 고스란히 빼닮는다면 틀림없어.”
터거는 심드렁하게 말하며 멋진 갈기털을 흔들어 묻지도 않은 먼지를 떨어냈다. 어린 고양이들은 낄낄대며 웃었다. 고양이는 본래 잠이 많은 동물이라지만 스킴블과 제니는 유난히 정도가 심했다. 스킴블은 화물칸에 숨어 자느라 승객들까지 나서서 그를 찾아다니는 통에 기차를 연착시킨 경력이 있었고 제니의 인간 가족들은 그녀가 계단 밑 지정석에서 벗어나는 걸 도통 본 적이 없었다. 터거가 농담 삼아 내놓은 20시간 수면설은 과장되긴 했어도 어느 정도는 사실을 반영했다. 봄발루리나는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끼어들었다.
“그렇지만 듀터로노미한테서 터거 같은 아들이 태어나기도 하니까 또 다를지도 모르지.”
터거는 자신의 어디가 어떻냐는 듯이 놀란 표정으로 두 팔을 들었다. 턱시도를 입은 것처럼 가슴에만 하얀 털이 자란 새까만 새끼고양이가 그 뒤에서 그의 동작을 흉내 냈다. 고양이들이 숨넘어가게 웃음을 터뜨린 이유를 금방 눈치 챈 터거는 쿠악소란 이름의 그 고양이에게 위협적으로 주먹을 을러대곤 꼬리를 휘둘러 어린 고양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듀터로노미께선 아홉 번 생을 살면서 아홉 부인을 얻었다고들 말하지만 실은 아흔아홉 일지도 모르지. 생각해 봐, 그 어르신의 젊을 적, 그러니까 100년도 전의 일을 목격한 고양이는 없어. 그 시절에 살아있던 고양이들은 지금은 먼지도 안 남았다고. 그런데 어르신이 이번 생에 맞은 부인은 내가 아는 부인만도 두 분이란 말이야.”
“듀터로노미께 무례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해. 멍커스가 여기 있었으면 한소리 했을걸.”
정색하며 반론을 내놓은 건 젖소처럼 얼룩무늬가 있는 어린 수고양이였다. 터거가 무슨 말을 해도 고개를 끄덕일 준비가 되어있는 어린 고양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정면으로 반대할 줄 아는 그 고양이가 터거는 싫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수고양이가 상대라면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일부러 져주는 행동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았다.
“그게 왜 어르신의 명예에 누가 된다고 생각하지? 암고양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건 그만큼 그분이 유쾌하고 멋진 고양이였다는 뜻이고, 아홉 번이나 칭송받는 삶을 살았다는 건 그럼에도 수고양이들한테 별 불만이 없었다는 뜻이야. 우리가 아는 어떤 고양이는 유쾌하고 멋진 고양이를 말썽쟁이와 동의어로 여기는 듯도 한데, 이것 봐 알론조. 좀 더 자라면 너도 알게 될 거야. 수고양이에게는 암고양이를 즐겁게 해줄 역사적 사명이 있다는 걸 말이지. 나는 우리 아버지를 닮아서 제대로 끝내주는 고양이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아, 이미 진행형인가?”
터거는 화려하게 팔을 휘둘러 어린 암고양이들을 가리켰다. 암고양이들은 환호했고 수고양이들은 더욱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알론조는 웃음과 찡그림의 중간쯤 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다른 어린 고양이들과 달리 그는 터거를 어려워하는 편이었다. 나이 많은 어른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멍커스트랩에게 시건방지게 굴 수 있는 유일한 고양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어린 수고양이들과 마찬가지로 터거의 말을 진지하게 곱씹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터거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수고양이들 중에서 가장 쉽게 말을 붙일 수 있는 고양이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 있던 유일한 어른인 봄발루리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더니 큰소리치는 터거를 가볍게 비꼬아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요즘 밤마다 그렇게 바쁜 거니? 통 얼굴 보기가 힘들던데.”
“나와의 데이트를 꿈꾼다면 가서 줄서시지. 라고 말하고 싶은데 당신한테 그랬다간 뺨맞을 것 같군. 선심 써서 댄스파트너 신청이라면 받아주지.”
“유감이지만 넌 뒤로 가야겠어. 나도 이미 신청줄이 늘어섰거든. 젤리클볼의 댄스리더쯤 된다면 모를까 아무 수고양이한테나 귀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은걸.”
“이런, 그 댄스리더가 당신한테 선심 써주는 거라고. 겸사겸사 당신 쪽 줄에 선 불쌍한 수고양이들도 구제해주고 말이지.”
“희생해주는 건 내 쪽이 될 것 같구나. 댄스리더라니, 네가 춤 연습하는 걸 본 기억이 없는데 틀림없이 파트너한테 못된 장난을 칠 궁리 중이겠지?”
“원한다면 그것도 서비스해 주지. 그런데 나는 연습 안 해도 최고인 걸 어쩌겠어. 아아, 조용히 조용히. 내 말 못 믿겠나? 알았어, 특별히 너희들에게만은 간단한 시범을 보여주지.”
어린 고양이들은 열렬히 박수를 쳤다. 터거는 기다렸다는 듯이 힘 있게 사지를 뻗기 시작했다. 젊은 고양이답게 격렬하면서도 유연한 그 동작이 마음에 들었던 어린 수고양이들은 그를 따라 하기 시작했고, 암고양이들은 취향대로 환호에 열중하거나 그에 어울릴만한 춤을 고심하며 수선을 피웠다. 곧 공터에는 어린 고양이들이 춤을 추며 야옹거리는 소란이 넘쳐났다. 그러던 중 새하얀 고양이 빅토리아와 더불어 고무공처럼 가볍게 뛰어다니던 새까만 턱시도고양이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조그만 앞발을 번쩍 치켜들었다.
“저기, 터거. 젤리클볼이라니까 궁금한 게 있는데.”
춤을 추는 행위 자체에 매료된 고양이들은 직접 질문을 들은 상대인 터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괜히 쑥스러워진 쿠악소는 어깨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그의 눈치를 보며 조그맣게 말했다.
“헤비사이드 레이어로 갈 고양이를 선택하는 기준이 뭐야?”
터거가 멈추자 어린 고양이들은 즉시 춤을 멈추고 터거와 봄발루리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여기서 젤리클볼을 경험해본 고양이는 그들 둘밖에 없었기에 어린 고양이들은 틈만 나면 그것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봄발루리나는 묘한 웃음을 띠더니 터거더라 설명하라고 손짓했다. 멍석을 깔아주면 놀다가도 걷어치우는 성미지만 분위기상 빠져나갈 수 없다 싶자 터거는 헛기침을 하며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음, 어흠. 행복의 의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하지. 그 의미를 깨달은 고양이가 새 삶을 얻게 되는 거야.”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어르신이 그렇다고 하셨어. 뭐야, 너 듀터로노미께 덤비냐?”
“모르면 모른다고 그냥 말해, 터거.”
터거는 상큼하게 싱긋 웃었다. 다음 순간 쿠악소는 입매가 주욱 늘어나는 걸 느꼈다. 터거가 양 볼을 잡아당긴 것이다.
“요 입이냐? 응? 아까부터 귀여운 소리만 골라 지껄이는 게 요 입이냐?”
뭐라고 반론을 하기 위해서든 그저 심술궂은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든 열심히 버둥거리던 쿠악소는 결국 으앙 울어버렸다. 덩치가 산만한 소년이 자기 나이의 반도 안 되는 동생을 괴롭히고 있으면 돌아와야 할 어른의 응징이 바로 뒤따랐다. 머리를 지그시 짓누르는 무게를 느낀 터거는 얼른 쿠악소를 놓아주었다. 울면서 또래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 온 새끼고양이를 빅토리아가 달래주는 것까지 본 후 그는 머리위에 놓인 앞발을 가리켰다.
“여기엔 여러 가지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정이 있어.”
“그 결과 애를 울렸지. 미안하다, 쿠악소. 이 녀석은 내가 혼내마.”
멍커스트랩은 말썽쟁이 동생을 질질 끌고 갔다. 거창하게 한숨을 쉬며 앞발을 흔드는 터거에게 어린 고양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같이 앞발을 흔들어 답했다.
폐차장 밖으로 나와서야 멍커스트랩은 터거를 놓아주었다. 그는 귀 뒤를 긁으며 딴청을 피우는 동생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너 지금 순찰 돌 시간 아니냐? 애들 봐주는 것도 좋지만 의무를 먼저 다하도록 해.”
“쳇, 내가 노는 꼴은 절대 못 봐주지?”
“잘 아는군. 어서 가라. 다들 기다리고 있어.”
근래 들어 터거가 밤마다 바쁘던 건 이런 이유였다. 터거는 투덜거리며 그 날 일족의 영역을 순찰할 젊은 고양이들이 모여 있을 어두운 골목 어딘가를 향해 사라졌다. 순찰은 대개 멍커스트랩 또래의 젊은 고양이들이 하는 일이었지만 그는 일부러 아직 어린 동생을 끼워 보냈다. 자신도 그 무렵에 일족의 보호자 고양이의 권유로 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터거가 떠난 후 멍커스트랩은 잠시 앞발을 내려다보았다. 또래보다 월등히 키가 큰 그는 말 안 듣는 동생을 혼낼 때면 키 차이를 이용해 머리를 지그시 누르곤 했다. 그런데 오늘 그의 앞발이 닿았던 높이는 이전까지 그가 알던 그 높이가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터거는 아직 어린 고양이이며 한창 성장 중이다. 체격이 듬직한 듀터로노미의 영향인지 형제는 다들 키가 컸는데 동생은 곧 자신의 키도 따라잡을 것 같았다. 수건에 싸여 처음 폐차장에 왔을 때의 동생이 얼마나 작았던가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뭔가 신기한 기분에 휩싸여 멍하니 앉아있던 멍커스트랩은 누군가가 다가오는 걸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여, 바보 형님.”
“...뭡니까, 그건?”
“자네의 바보 아우가 자네에 대해 괜찮은 호칭을 생각해냈던데.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어거스터스는 기분 좋게 꼬리를 흔들며 걸었다. 멍커스트랩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했다.
“이번 젤리클볼 때는 자네가 사회를 맡아보겠나?”
“당신이 멀쩡히 살아있는데 제가 어찌 감히.”
“너, 말에 뭔가 뼈가 있어.”
“당연하잖습니까. 저는 아직 풋내기란 말입니다. 이유도 들을 수 있을까요?”
“그 빨간 녀석에 대한 소문이 잡혔거든. 최근에 이 인근에서 비슷한 녀석을 본 것 같다던가. 해서 난 일 좀 해야겠다.”
검은 고양이는 여전히 기분 좋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멍커스트랩은 정색을 하며 멈칫했다가 잰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1년 전 이맘때 마주쳤던 그 붉은 고양이를 멍커스트랩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는 일부러 서툴게나마 농담을 꺼냈다.
“남들 다 놀 때 과외근무라니 보호자는 괴롭군요.”
“뭐 나 개인적으론 밤새도록 남들 소개나 하고 백댄서 노릇하기도 지겨우니까 상관없어.”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작년에도 아무것도 안 하고 구경만 한 제가 잘 할지 어떨지는 자신 없습니다.”
“백댄서 전문 사회자한텐 아무도 신경 안 쓸 테니까 염려 마. 고양이들은 내버려둬도 알아서 잘 노는 거 알잖나.”
확실히 작년의 젤리클볼 때는 어거스터스가 아무것도 안 했음에도 고양이들끼리 알아서 축제를 잘 진행했다. 사회자가 보이지 않아도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개인주의자답게 고양이들은 나름대로 일이 있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멍커스트랩은 검은 고양이가 금년에도 개회만 선언하고 사라지면 될 텐데 굳이 자신에게 사회를 맡기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일족의 보호자 고양이가 일족이 가장 중시하는 축제조차 제쳐놓고 관심을 보이는 일이 가벼울 리 없다. 그가 직접 나서서 경계할 만큼 맥카비티는 위험한 고양이다. 하지만 최근에 잡힌 흔적은 듀터로노미의 후계자에게까지 알려야 할 정도는 아니기에, 보다 확실히 조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대신 신중한 그의 성격대로 젤리클 일족의 보호를 자신에게 맡기려는 게 아닐까하고 멍커스트랩은 짐작해보았다.
지난 1년간 젤리클 일족은 많은 새끼고양이를 얻었다.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있었다. 스킴블과 제니가 가진 아이처럼 태어날 날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다. 그들은 그 붉은 고양이가 어린 고양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평화를 깨뜨리는 걸 결코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일족 최대의 축제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고양이들은 벌써부터 반쯤은 이성을 잃어버렸다. 얌전히 앉아 몸단장을 하다가도 갑자기 신들린 듯이 들썩이는 고양이들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 가족들은 걱정스러워하고 심지어 겁에 질리기도 했다. 젊은 고양이들이 흥분해서 사고를 치는 걸 막기 위해 일족의 현명한 어른 고양이들은 그들에게 일거리를 던져주었다.
스킴블은 폐차장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조명을 달고 춤출 때 방해될 유리조각이나 위험한 고철을 치우는 작업을 지휘했다. 어지간히 엄격한 고양이, 이를 테면 어거스터스나 멍커스트랩 같은 고양이가 감시하지 않으면 금방 늘어져서 일을 소홀히 하는 게 젊은 고양이들이었지만 스킴블이 인간을 감독하던(?) 솜씨를 발휘해 쫓아다니며 꾸중을 하니 빨리 도망가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단법석이 난 폐차장 바깥에서는 암고양이들이 축제 때 쓸 음식을 만드느라 부산하게 움직였다. 어린 고양이들과 종종 놀아주지만 어쨌든 어른에 속하는 봄발루리나는 제니와 젤리로럼 같은 다른 나이든 고양이들을 돕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녀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졸졸 따라다니는 어린 드미터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곳까지 따라가서 어른들이 일하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유심히 구경했다. 이따금 맛있는 냄새를 맡은 어린 고양이들이 살금살금 다가와 음식에 앞발을 뻗다가 제니의 무시무시한 눈초리에 얻어맞고 깨갱 소리를 내며 도망가곤 하는 걸 빼면 폐차장 주위는 평화롭기만 했다.
도무지 축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고양이도 있었다. 어거스터스는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도시 이곳저곳에 불쑥 나타나곤 했다. 그는 강변이나 하수구같이 고양이가 꺼리는 장소 뿐 아니라 다른 고양이 일족의 영역, 심지어 개의 영역에까지 드나들었다. 평범한 수고양이가 그를 흉내 냈다간 틀림없이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일족의 보호자 고양이가 붉은 고양이의 흔적을 쫓아 동분서주하는 동안 멍커스트랩은 그의 대리로서 축제 준비를 이끌고 어른 고양이들의 민원을 처리하고 어린 고양이들을 가르쳤다. 고양이 나이로 스물넷에 이른 그는 이미 온화하고 성실하며 지혜로운 고양이로 명성이 드높았다. 고양이는 단체행동을 모르지만 협동은 안다. 일족의 구성원들은 그 일에 흥미가 동했다는 전제가 필요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예외가 있다면 이 젊은 고양이에게 끊임없이 두통을 안기는 방자한 동생 정도였다.
“먹으면 안 돼, 터거.”
제니가 한눈을 판 틈을 타 쥐고기 파이에 슬쩍 앞발을 뻗던 터거는 드미터의 고발로 인해 현장에서 적발되고 말았다. 어리석은 쥐나 난폭한 바퀴벌레도 결국에는 자기 뜻대로 교화시키고 마는 무서운 암고양이는 득달같이 달려와 터거를 쥐어박으려 했다. 터거는 파이가 쌓여있던 보자기 째로 물고 쏜살같이 내뺐다. 드디어 제니의 감시를 뚫고 음식을 슬쩍하는 데 성공한 고양이가 등장하자 어린 고양이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제니나 스킴블한테 걸려 혼나는 걸 피하기 위해 폐차장에서 멀지 않은 놀이터에 몰려든 어린 고양이들은 방금 구운 파이조각을 물고 시시덕거렸다. 그들은 게으른 표정으로 늘어진 터거에게 자꾸만 어떻게 파이를 슬쩍했는지 물어보았다.
모두의 입에서 파이가 사라질 즈음에 드미터가 나타났다. 대단히 화가 난 표정의 어린 고양이는 터거를 향해 곧바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터거는 기름기만 묻어있는 보자기를 흔들었다.
“미안. 파이 다 떨어졌다.”
“가서 아줌마한테 사과해.”
다짜고짜 언성을 높이는 그녀에게 깜짝 놀란 어린 고양이들은 입에 든 마지막 파이조각마저 떨어뜨릴 지경이었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그 고양이는 어지간해서는 소리를 지르는 법이 없었다. 터거는 한가롭게 귀를 긁었다.
“드미터. 우린 배가 고파.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는 잔치 전날이면 특히나 그렇지. 그래서 현명하신 우리 조상들은 괜찮은 해결책을 내놓으셨어. 용감한 고양이라면 음식 맛을 볼 수 있게 말야. 이름 하여 서리라고 하지.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이면 음식 준비하는 어른들도 어느 정도는 눈감아 주시고, 정말 맘씨 좋은 분들은 아예 모른 척 하지. 봐라, 내가 어떻게 저 제니애니닷츠가 노려보는 앞에서 보자기 째로 들고 왔겠냐. 이건 관습인 거야.”
쿠악소가 조그맣게 궤변이라고 중얼거렸지만 다른 어린 고양이들은 터거의 설명에 매료되었다. 심지어 어거스터스나 멍커스트랩 같은 고양이를 존경해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엄격해지려 노력하는 알론조조차 자신도 서리하러 갈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미터는 물러서지 않았다.
“난 처음 듣는데?”
“누가 그런 걸 일일이 알려 주나? 배고픈 녀석이 쥐를 잡아야지.”
“어거스 아저씨한테 물어볼 거야. 정말로 그런 게 있냐고 확인받을 거야.”
드미터는 씩씩거리며 돌아섰다. 일족의 보호자라는 지위에서 뿜어지는 휘황찬란한 위엄에 기대어 나이든 힘이든 말발로든 이길 수 없는 적을 제압하려는 것 같았다. 위엄으로 치자면 듀터로노미를 이길 고양이가 없겠지만 어린 고양이가 보기에 그는 거의 하느님이니 그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어거스터스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터거는 박수까지 치며 낄낄 웃었다.
“어거스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하늘만 알걸. 아, 혹시 모르겠군. 지금쯤이면 멍청한 폴리클 똥개들과 한 잔 하려나?”
“그럼 폴리클 개들한테 가.”
“농담 마. 고양이 영역에 들어온 개는 운 좋으면 멀쩡히 나갈 수 있어도 개 영역에 들어간 고양이는 끝장이야. 고양이가 약한 게 아니라 대응하는 태도 자체가 다르다고.”
“아저씨는 괜찮잖아. 당장 가.”
“그 고양이가 평범한 고양이냐? 차라리 멍커스한테 가자. 아니면 어르신께 여쭤볼까?”
“당장 가!”
드미터는 빽 소리를 질렀다. 어린 고양이들은 아예 얼어붙었다. 유들유들하게 받아넘기던 터거마저 얼떨떨해 할 정도였다. 결국 터거는 어린애 고집에 졌다는 표정으로 털고 일어섰다. 그는 쿠악소와 알론조를 눈짓으로 불렀다.
“멍커스한테 우리가 숲으로 간다고 전해줘.”
알론조는 짐짓 놀란 시늉을 했다.
“당신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잖아. 이거 놀라운데. 멍커스한테 일부러 혼나려는 거야?”
“유감이지만 아니네요. 드미터 저 고집쟁이는 내 말은 안 들어. 그러니까 멍커스의 앞발이라도 빌리려는 거야. 난 최대한 시간을 끌지. 아, 쿠악소가 가. 알론조 너는 어린 고양이들 간수하라고 부른 거야.”
쿠악소는 고개를 끄덕이고 쪼르르 달려갔다. 알론조는 자신 또한 아직 어린 고양이인데도 다른 어린 고양이들을 책임지게 되자 대단히 흡족해 하는 눈치였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는 드미터의 뒤를 어슬렁어슬렁 쫓으면서 터거는 어린 고양이들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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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미스토의 오동통한 볼 하악하악 (빠아아아악!)
필름에 대해선 한 마디만 하겠음. 컨져링턴 돌리도!! OTL 아니 그 전에 모든 미스토는 들어라. 비키를 그런 식으로 보낼 순 없어. 갑순이 시집보내는 갑돌이가 되어야 할 것 아니냐! 배알도 없는겨! ;ㅁ;
...네에... 팬웍이란 건 사실 이런 억하심정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